지덕사
 
 
 
 
 
현재위치 : 홈 > 열린마당 > 관련사이트

 
작성일 : 08-07-06 01:42
'숭례문'은 왜 세로로 썼을까? 이종찬 U포터는 시인입니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951  
   http://uporter.sbs.co.kr/nsNews/goSectionView.action?newsId=36880 [575]

숭례문의 예(禮)는 불꽃 염(炎)이다

국보 제1호 하면 숭례문이요, 보물 제1호 하면 흥인지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남대문, 동대문 해야 얼른 알아듣는다. 왜일까? 이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얕잡아보고 깔아뭉개기 위해, 도성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대문, 동쪽에 있다 하여 동대문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되새겨볼 일이다. 아니, 그냥 되새겨보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렇게 불러서는 아니 될 말이다. 예를 숭상한다는 깊은 뜻이 있는 숭례문과 사람을 일으킨다는 넓은 뜻을 가진 흥인지문이란 좋은 이름을 놔두고, 굳이 일제가 엉겁결에 지어낸 남대문, 동대문 할 까닭이 없질 않겠는가. 자신의 좋은 이름이 있는데 누군가 개똥이, 말똥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좋겠는가.

 

조선시대 우리 조상은 유교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생활의 뿌리로 삼았다. 그런 까닭에 서울의 사대문의 이름에도 '인의예지'란 글자를 넣었다. 동쪽은 인을 나타내기 위해 흥인지문이라 했고, 서쪽은 의를 나타내는 돈의문, 남쪽은 예를 뜻하는 숭례문, 북쪽은 지를 말하는 숙정문이라 불렀다.

 

숭례문(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은 조선 도성의 정문이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숭례문이라는 글씨는 양녕대군이 썼으며,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세로로 썼다고 한다. 이는 <주역>의 오행사상에 따른 것으로 예는 오행(木火土金水)의 화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또한, 남쪽은 불을 나타내는 방향이므로 이를 합치면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띤 '염'(炎)자가 된다.

이는 한강 너머 남쪽에 있는 관악산이 오행의 화에 해당하는 산이므로 현판에 불을 뜻하는 글씨를 세로로 세워 맞불을 피워 도성을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보호하려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게다가 숭례문은 도성의 정문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외국 사신 등이 드나들게 되어 있으므로 손님을 서서 맞이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서울에 남아있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인 숭례문은 조선 태조 4년, 서기 1395년에 처음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 서기 1398년에 세워졌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 서기 1447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그리고 1961∼63년 이 문을 해체하여 수리할 때 성종 10년, 서기 1479년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62년 국보 제1호로 지정된 숭례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모양을 띠고 있지만, 원래는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었다고 한다.

 

서울 중구청은 숭례문의 중앙 통로인 홍예문을 지난해 3월 일반인들에게 개방했다. 이어 중구청은 1907년 일제가 도로 개설 명분으로 허물었던 숭례문의 조선시대 성곽을 오는 2008년까지 좌우 10m씩 복원키로 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일제가 성문만 덩그러니 남겨둔 지 무려 100년 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