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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8-23 05:12
정북창과 양녕대군과의 관계를 알려주세요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66  

정북창(鄭北窓)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는 자가 없다고 하여 숨어 살며 이름을 감추고 구차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면, 어찌 행실을 가다듬어 이름을 세우는 선비와 비교가 되겠는가. 북창 선생의 열전을 짓는다.

북창 선생은, 성은 정(鄭)씨, 이름은 염(), 자는 사결(士潔)이며, 북창(北窓)은 별호이다. 그의 선조는 백제 탕정현(湯井縣) 사람인데, 전대(前代)에 드러난 사람이 많았다. 우리 예종(睿宗)ㆍ성종(成宗) 연간에 걸쳐 교리 충기(忠基)와 헌납 탁(鐸)이 2대를 이어 높은 벼슬을 하였다. 탁이 순붕(順朋)을 낳았는데, 순붕은 중종(中宗)ㆍ인종(仁宗)ㆍ명종(明宗) 세 임금을 섬겼으니 가장 귀히 등용된 분이다. 그가 선생을 낳았다. 어머니는 태종의 장왕자(長王子)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의 증손녀이다.

중종 원년(1506) 3월 갑신에 선생이 태어났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마음을 가다듬어 신(神)과 통할 줄 알았고, 가까이는 동리 집안의 사소한 일에서 멀리는 사이 팔만(四夷八蠻) 밖 풍기(風氣)의 다른 점과 개소리ㆍ새소리 같은 오랑캐의 말까지도 마치 귀신처럼 잘 알아 맞추었으며, 방기(方技)의 온갖 술법도 모두 말은 하지 않아도 다 알았다.

14세에 중국을 관광하였는데, 이상한 기운을 바라보고 중국에 왔다는 유구(琉球) 사람이 선생을 보고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운명을 점쳤더니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중국에 들어가면 어떤 진인(眞人)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더니 당신이 참으로 그 사람이신가 봅니다.”

하고, 그 자리에서 배우기를 청하였다. 이리하여 외국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앞을 다투어 찾아와 보았다. 선생이 각국의 말로 응대하니 사람들은 깜짝 놀라 이상히 여기지 않는 자가 없고 천인(天人)이라고 불렀다. 한 사람이 자기의 운명을 묻는데, 객관(客館)에서 품팔이로 땔나무를 나르는 사람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눈여겨 보았더니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너도 할 말이 있어서인가?”

하니,

 

“그렇습니다.”

하였다. 같이 말을 나누어 보니 음양(陰陽) 운화(運化)의 기이한 술법을 잘 통한 사람이었다. 선생이,

 

“네가 어찌하여 품팔이를 하는가?”

하니,

 

“이렇게 살지 아니하였다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저는 촉(蜀) 나라 사람입니다. 아무 해에는 아무 데로 가게 될 것입니다. 선생은 벌써 만물에 신통하여 무궁한 경지에 들어가셨으니, 《도덕경(道德經)》에 ‘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의 일을 다 안다.’고 한 말이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인가 봅니다.”

하였다. 선생은 천성이 술을 즐기어 두어 말[斗]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언젠가 말하기를,

 

“성인은 인륜(人倫)을 중히 여기는데, 석가(釋迦)와 노자(老子)는 마음을 닦고 성불[見性]하는 것만 말하고 인사(人事)의 학문은 빠뜨렸다. 아마 석가와 노자는 대개는 같으면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하였다. 늘 탄식하기를,

“말하여도 믿어 주지 않고 행하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고, 마음껏 노래 부르며 스스로 희롱하며 방외에 즐거움을 붙였다. 그러면서도 보통 사람보다 남다른 점이 있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남과 더불어 말할 적에는 단 한마디라도 공자(孔子)의 학에서 벗어난 말이 없으니, 아마 그 깨달음은 중[禪]과 같고 그 행동은 노자와 같았으나,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한결같이 성인으로 종(宗)을 삼아서였을 것이리라.

내가 그의 사적을 상고해 보았더니, 19세 때 국자시(國子試)에 뽑히고는 다시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양주 괘라리(掛蘿里)에 살 곳을 정하고 있었다. 중종 때에 장악원 주부, 관상감과 혜민서의 교수(敎授)가 되었고, 뒤에는 포천 현감(抱川縣監)이 되었다가 갑자기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숨어 살며 세상에 발길을 끊고 침묵을 지킨 지 10년 만에 세상을 마치니, 때는 명종 4년(1549), 나이는 43세였다.

선생은 스승도 없었으며, 또한 제자도 없었다 한다. 양주 사정산(砂井山)에 북창 선생의 무덤이 있다.

<기언(記言) 제11권 원집(原集) 중편 청사열전(淸士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