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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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1-06 00:16
수산집(修山集)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594  
저자는 鄭齊斗 이래의 江華學派 가운데 역사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良知史觀에 입각하여 역사를 파악하였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古代史를 다룬 〈東史〉를 비롯하여 7개의 志로 구성된 〈高麗史〉를 지었으며, 우리 疆域에 대한 관심으로 옛 영토의 회복을 희망한 〈東國輿地雜記〉를 지었다.
저자의 시문은 死後에 곧 아들 李東稷이 家藏 遺稿를 수집, 편차하여 저자와 절친하였던 趙重鎭에게 刪定받아 詩文 10권, 東史 4권 총 14권으로 編定하였다. 1798년 6월에 趙重鎭이 지은 序文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저자가 졸한 지 1년여 만에 刪定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저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만큼 자신의 詩文을 생전에 정리해두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당시 大司諫으로 재직 중이던 李東稷은 이렇게 산정한 定稿本을 다시 洪良浩에게 보여 주고 1799년(정조 23) 중엽에 序文을 받은 뒤 芸閣活字로 문집을 간행하였다.《초간본》 이 본은 현재 규장각(奎4574),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231),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629),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본집의 권말에는 1803년(순조 3) 申大羽가 쓴 書後가 실려 있어 1803년 이후에 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印本에 드러나는 특징은 좀 더 이른 시기에 간행된 듯하다. 즉, 본집 卷1 第7板 이후부터 종종 나타나는 匡郭 오른쪽 上段의 끊긴 듯한 형태는 본집 이 외에 金元行의 「渼湖集」, 金崇謙의 「觀復菴詩稿」 重刊本, 閔遇洙의 「貞菴集」 등에도 보이고 있다. 이들 문집은 「觀復菴詩稿」 重刊本의 ‘己未季夏芸閣活字重印’이라는 刊記를 미루어 모두 1799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본집도 이해에 지은 序文이 있고 형태도 매우 유사한 것을 근거로 이즈음 간행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따라서 1799년경 인행된 본집에 1803년에 申大羽가 지은 書後가 목판으로 첨부되어 각 도서관의 소장본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은 본집의 배포가 이 이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頒帙이 늦어진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다만 아들 李東稷이 1800년 2월에 대사간에서 체직되고 李東冕도 이해 2월에 지평으로 계사를 진달한 이후 1803년에 가서야 實錄을 통하여 이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으니, 그 사이 老論 僻派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 일선에서 밀려났다가 1803년경에 다시 나올 수 있었고 그것이 본집의 頒帙 시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본서의 저본은 1799년경 芸閣活字로 인행된 초간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영인저본 중 권6의 제19판은 卷次가 5로 誤記되어 있다.